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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영 수필가(미주장신 신대원, 에세이 에디터)

 

그리스도의 종

신학생 장덕영은 선배 성도 여러분께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복된 평강을 기원하며

인사드립니다

 

제가 신대원에 입학

벌써 세 학기를 넘기고 있습니다

풋풋하고 참신한 한창때지요

배우면 배운 대로

들으면 듣는 대로

외우고 따라하는 늦깎이 신학생이랍니다

마치

밤늦게 그리스도를 찾아온 니고데모처럼 말이지요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께 찾아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누구도 당신이 행하시는 표적을 수행할 수 없다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임을 언급합니다 (요3:2)

보이는 무언가를 봐야 마음을 움직이는 우리네 사람들의 흔한 행위지요

우리는 보이지 않으면 당최 마음을 움직이지 않습니다

동영상이나 제시해줘야 ‘믿어 주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다면 복되다(요20:29)는 말씀을 무시한 결과지요

우리 세대는 아날로그 시절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겠습니다

지금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직접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려하지 않습니다

쓰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오직 눈으로 보는 것 외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책이 가장 멀어졌지요

그러니 성경은 말해 뭐합니까 안타까운 일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10:17)는 말씀을 이해나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표적을 믿고서 아니 그보단

보지 않고 믿는 자로서 그리스도를 만나야겠습니다

 

어느 해 여름 한창 무더운 날

제게 이런 인연이 있더랬습니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고

그 인연으로 지금은 벌써 섬김의 자세로 살아가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제게도 한 가지 숨기는 게 있습니다

가톨릭 교우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니고데모가 바리새 친구들에게 그리 했을까요

저도 여태껏 터놓지 않고 지낸답니다

 

개종한 사실이 부끄러워서가 아닙니다

외려 너무 늦게 알아 아쉬울 뿐이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분명 옛 사람을 벗고 지금 새 사람으로 삽니다 (엡4:22-24)

의인의 올곧은 의미를 알고

의인이기에 오직 믿음으로 살 수 있다는 강한 의지가 (합2:4 롬1:17 갈3:11)

저를 받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특별히 생각하사

제 머리 위로 내려주신 ‘외부의 의’가 저를 감싸고 있기에

저는 부끄러울 게 없습니다

믿음으로써 의롭게 됨은 허투루 한 말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니고데모처럼 밤에 그리스도를 찾는 행위가 내게 있었음은 감출 수 없겠지요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를 거듭남으로 깨우치신 것처럼 (요3:3-5)

제게도 그리스도의 성령이 임하여 새 사람으로 거듭남을 도우신 게지요

그걸 믿기에

아직 말 못하는 속내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조차도 내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일 테니까요

 

구교에 몸담고 있는 동안

저는 그저 ‘다니는’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남들이 일어서면 일어서고

장엄한 그레고리안 찬트에 감격하고

화려한 신부의 의상에 압도당하는 겸손을 미덕으로 삼으며

그냥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참 오래도록 그리도 잘 해왔습니다 깨우침 없이 말입니다

항상 깨어 있으라(눅21:36)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무시해도 너무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저러다

무의미를 사유로 사직서를 냈고

한동안 ‘그리스도 밖’에서 지냈더랬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마치

신구약 중간기의 아무 기록 없는 그 시간처럼

충분히 메마르고

아주 충분히 메말랐다고 생각할 즈음

무방비 상태에 있는 저를 한국에서 온 친구가

느닷없이 끌고간 곳이 남가주 사랑의 교회였습니다

제게는 교회에 간다고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요

그는 좋은 데 있으니 한번만 가보자 했고

저는 그러라고 한 게

애나하임에 있는 사랑의 교회였지 뭡니까 글쎄

 

너무 기가 차고 말도 안 나왔지만

어쨌거나 그 시간 속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간

우린 그 누구도 맘대로 벗어나거나 어떻게 하지 못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예배의 시간

그 시간의 교회

그 교회의 저는

오롯이 묵상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겠지요

그래요 그래서 묵묵히 눈을 감고 있었어요

저 외에는 모두 소리 높여 찬송하고 손을 들어 찬양하며 그 시간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고들 있었드랬습니다

저만 이방인이었나봐요

 

그들이 저를 대신해 ‘저의 하나님’께 찬양드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를 대신해 ‘저의 하나님’께 찬송 올린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의 하나님’께 저를 위해 기도드린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결국 눈물 흐르더군요

고개를 떨구고 앞 의자 등받이에 손을 얹어 의지하고 있는데

죄 같은 것들이 물이 되어 흘렀습니다 제 얼굴 위로

성령께서 하신 일이겠지요 다 아는 것처럼

저라고 별수 있었겠나요

 

저는 요즘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의 말씀을

읽고 듣고 이해하기만 무한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사사로운 관념들을 전부 걷어내고 있지요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중세 순례자의 그 여정을

이제 막 출발하고 있습니다

반복되지만 지루하지 않고 일정하지만 무료하지 않은 이 길을 따라

성경 하나만 들고 매일 나아가고 있습니다

구도자의 길이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쓰실 좋은 도구가 될 ‘가능태’를 입고서 말이지요

 

늦게 출발했으니 쉴 틈도 없을 터

좋아하는 그리스 로마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이야기를

이토록 오랫동안 그만둔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말입니다

삼삼한 그 옛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잡스럽게 느껴지고

성경 말씀 외에는 다 먼지처럼 느껴지니 신통하지 않습니까

 

인문학에 빠진 이후 이야기 배경이 유대역사에 이르렀을 때에도

결코 제가 신학을 공부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지요

인간이 ‘자유의지’만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배운 바처럼

성령을 믿고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에 이르렀을 때가 다름 아닌 그

성령께서 제 등을 슬쩍 교회 안으로 밀어넣었던 때임을 이제는

진정 압니다

 

니고데모의 행동

바리새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밤에 만나곤 했겠지요

그러나 무얼 감춘다는 생각보단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여기기에

내가 가는 길을 숨기고픈 맘이 더는 없습니다

성화로 나아가는 믿음에서 비롯되었기에 그렀습니다

 

성령께서 저를 이토록 움직이고 계시니

저는 그 성화의 길을 걸을 뿐이고

사실대로 고백하는 겝니다

제 몸이 교회됨을 이제는 아는 바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늦게나마 여러 선배 성도의 대열에 동참하여 참교회가 되겠습니다

 

선배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종된 저는

신학생으로 부르심 받아

복음을 배우고 전파하도록 택정함을 입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선배 성도 여러분과 함께

영원토록 ‘사랑으로 서로에게 종이 되어’ (갈5:13)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사랑’을 실천해 나아가겠습니다 (갈5:1-15)

 

[기사출처: 크리스천 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