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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5일 연방하원에서 소위 ‘포괄적 동성애 인권법안’이라 불리는 평등법(H.R.5 Equality Act) 이 통과됐다. 현재 이 법안은 연방상원에 상정되어 투표를 앞두고 있다. 또 하나의 사특하고 악한 법이 ‘평등’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되어 우리 교회와 사회를 옭아매고 있다. 가족과 성에 대한 가치와 전통은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도전에  무너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성 규범 혼란과 가족해체가 당연한 뉴노멀(new normal)로 수용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성을 둘러싼 논쟁의 시대다. ‘글로벌 성혁명’이라는 표현도 결코 낯설지 않다. ‘성혁명’은 교회현장마저 아노미에 빠뜨릴 만큼 파괴력이 강하다. 시대정신처럼 군림한다. 오랫동안 반기독교적 성혁명 사상가들과 활동가들이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세워 온 사상체계와 그들의 행동강령은 교회와 사회를 공격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적 세계관과 창조원리를 무너뜨리려 우는 사자처럼 덤벼든다. 하나님 형상 파괴를 더욱 가속화하는 성혁명을 시대의 진보된 사상으로 둔갑시킨 것은 사탄의 사악한 계략이다.

이런 사조에 비판 혹은 저항하는 이들을 시대에 뒤진 사람으로 취급하고, 법적으로 제한하고 구속하는 일들은 미국은 물론 지구촌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오염된 성문화는 성규범 해체로 이어져 가정 파괴, 인간성 상실, 기독교 해체로 귀결된다. 평등이라는 이름의 차별법을 저지하는 운동은 성혁명이라는 음란한 실체와 그 세력에 대항하는 거룩한 운동이다.

성이란 카오스(혼돈)이면서 우주(질서)다. 욕망의 근저이면서 생명의 뿌리다. 하나님이 정하신 성을 인간 마음대로 재단하고 정의하는 일은 하나님에 대한 반항이자 도전이다. 성이란 에덴동산의 선악과와 같다. 하와는 먹음직도 하고 봄직도 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그 열매를 따먹음으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다. 그 행위보다 더 근원적 죄악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교만과 탐심이었다. 이는 결국 카오스다. 사랑과 정의와 평등의 하나님이 정하신 성적 규정을 인간이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무너뜨리려 한다. 그 기저에는 성과 가족 개념을 스스로 정하려는 인간 휴브리스(hubris)가 작동한다.

인간 문명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그 문명을 움직이는 도덕과 사상이 타락할 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아이들이 유아원에서부터 자신의 성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고, 화장실, 탈의실, 샤워실과 같은 성적 구분이 필요한 공간을 해체하여 누구나에게 접근가능하게 하며, 학부모의 의견을 묻지 않고 어린 십대들에게 사춘기 차단제 호르몬, 절단수술, 화학 및 외과적 낙태에 대한 보험까지도 제공할 수 있게 하는 평등법은 결코 정의롭지 않다 하겠다. ‘평등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 학교, 단체들은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세금 면제 및 인증을 잃게 된다. ‘소아성애’도 하나의 성적지향(sexual orientation)으로 인정받아 다른 성도착증 범죄자들과 함께 성소수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들 이외 대다수 사람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신앙을 역으로 차별하는 법이다. 소름 돋는 무서운 악법이다.

평등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속내는 또 다른 차별이다. 전통적 성과 가정의 가치를 존중하는 우리 의식과 생활을 심각히 저해하는 악법이다. 나아가 생명과 창조 공간에 혼란과 죽음의 굿판을 벌이는 행위다. 법안들이 다수의 무관심 속에서 하나씩 통과되어 우리 의식과 신앙을 속박하는 이 현실이 코로나19 팬데믹만큼이나 을씨년스럽다. 진보와 혁신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기독교적 가치를 짓밟는다면 과연 그것이 평등이며 정의일까. 차별금지법이 역차별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 않도록 우리 모두 분연히 일어서야 하겠다.

[기사출처 조선일보]